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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의 국외 봉사활동, 나에게는?
기사작성 : 2018-04-23 16:18:20
이용민 기자 yongmin3@daum.net

  

 ▲국제청소년연합 국외봉사활동을 다녀온 대학생 (앞줄 왼쪽부터)문혜림, 레나, 박상아, (윗줄 왼쪽부터)박상민, 오이레 씨.

  [시사터치 이용민 기자] = 국제청소년연합은 10여 곳의 나라에 대학생봉사단을 파견해 견문을 넓히고 한국문화를 알리며 현지 봉사활동을 통해 호연지기(浩然之氣 )를 키우도록 하고 있다.

  대학생들은 자발적 의지로 국외봉사활동에 참여한다. 1년 가까운 시간을 아프리카, 인도 등에서 현지인과 여러 활동을 하고 돌아온 학생들은 긍정적 변화를 밝히고 있다. 국제청소년연합 박옥수 설립자는 국외봉사를 다녀온 청소년들의 변화과정을 보며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실제 다녀온 대학생들은 밝아진 성격과 담대하게 변한 모습을 내세웠다. 하지만 무작정 떠나는 1년의 시간은 젊은 청소년들에게 다시 오지 않을 소중한 시간이다. 국외봉사활동에 대한 뚜렷한 목표를 갖고 떠나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국외봉사단 활동을 마치고 지난 1월 귀국한 대학생들 몇 명을 지난 16일 충남대학교에서 만나봤다.

  아프리카 잠비아를 다녀온 문혜림(여·대2) 씨는 11개월의 국외봉사를 마치고 지난 1월 초 한국에 돌아왔다. 문 씨는 가장 큰 변화로 밝아진 모습을 이야기했다. 그녀는 “다녀오고 나서 주위 사람들이 제가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저는 못 느끼는데 많이 밝아졌단다.”라고 말했다.

  그녀가 국외봉사를 떠난 이유는 학교 문제였다. 문 씨는 “대학교 입학해 1학년을 지내며 학교가 다니기 싫었다. 그렇다고 안 다닐 수도 없고,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었는데 선배들에게 국외봉사 얘기를 듣고 가게 됐다.”라고 말했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일과를 보내던 고등학생들이 대학생이 되어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판단해야 하는 변화된 환경에서 느낄 수 있는 아주 평범한 이유로 들렸다. 하지만 마음속에서 학교에 대한 부담감을 이겨낼 수 없었다던 그녀의 가장 큰 현재 자산은 긍정적으로 변한 자신이었다.

  인도에서 고생 엄청 하고 왔다는 박상아(여·대2) 씨도 담대한 마음을 얻고 왔다고 이야기한다. 특히, 그녀는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어머니가 암으로 세상을 뜬 충격으로 학교생활도, 가족들과의 관계도 힘들었다. 어머니가 없는 빈 집안에 혼자 있으면 우울해졌고, 매일 밖에서 친구들과 놀며 게임으로 시간을 보냈다. 거의 게임중독 상태였다고 한다.

  박 씨는 “재밌어서 시작한 게임에 나중에는 제가 끌려 다니더라. 게임 중독으로 아빠 말도 안 듣다가 사이도 안 좋아졌다. 아빠가 너 같은 애 없어져도 편하겠다고 할 정도였다.”라고 당시를 기억했다.

  하지만 정작 국외봉사를 떠날 때 그녀의 아빠는 “널 보내는 게 정말 걱정된다. 생각도 안 하고 사는 애인데 어떻게 거기서 생각하고 살지 걱정이다.”라며 붙잡았다고 한다.

  현실의 절박함으로 떠난 인도에서의 9개월의 생활 중 그녀는 그곳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박 씨는 “현지에서 알게 된 친구가 아빠랑 많이 싸우더라. 저랑 비슷했다. 하지만 그 친구가 아플 때 아빠가 항상 와서 약도 주고 보살펴주는 모습을 보니 우리 아빠가 너무 생각나더라. 아빠도 나한테 그랬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평소 느끼지 못했던 자신의 퉁명스러움과 가까운 사람에 대한 소중함을 현지에 있는 또 다른 나에게서 느낀 것이다.

  박 씨는 “인도에서 처음 아빠한테 전화할 때는 잘 지내니 걱정하지 말라고 퉁명스럽게 말했지만 그일 이후로 아빠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엄청 울었다. 가족들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한국에선 절대 깨닫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그녀의 오빠 박상민(남·대3)씨는 더 일찍 2013년에 인도 봉사를 다녀왔다.

  박 씨는 “당시 엄마가 많이 아팠을 때인데 철이 없어서 집안을 돌보지 않고 자유롭게 지냈다. 그러다 보니 아빠와 사이가 안 좋아졌다. 장남이라 아빠가 기대하는 것도 많았기 때문이다. 아빠가 잔소리가 많아져서 날 싫어한다고 생각했지만 나중에 엄마가 위독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내가 부족했고, 변하고 싶다는 생각에 국외봉사를 떠났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인도 봉사활동을 하며 자신도 모르는 자신의 문제점을 알게 됐다. 그는 “같이 간 단원들과 부딪히면서 내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알고 왔다. 모든 사람에게 잘 대해주려는 착한 사람 콤플렉스가 있었는데 그러다 보니 내 진짜 속마음이 뭔지 모른 체 나는 좋은 사람이란 포장을 하고 있었다. 같이 지내던 사람들이 나의 진짜 마음을 얘기해달라고 하는데 나도 모르니까 고생을 좀 했었다. 다녀와서 솔직해지게 됐다.”라고 말했다.

  특히, 인도에서 무대 세트를 만들면서 너무 힘들었던 기억은 그의 아버지가 업으로 하는 건축일이 얼마나 힘든지도, 또 가족을 위해 얼마나 헌신하는지도 알게 됐다고 한다. 물론 지금도 잔소리를 듣지만 사랑의 마음을 알기에 극복한다고.

  선진국인 독일로 다녀와 독일어를 자연스럽게 익히고 온 오이레(여·대3) 씨도 있다. 오 씨도 힘든 대학생활 때문에 국외봉사를 선택했다.

  그녀는 “대학 가서 보니 다들 외고를 나왔거나 외국에서 살던 사람들이더라. 독일어를 전공하는데 1학년 때 교수님이 천천히 하는 말도 못 알아들었다. 너무 힘들고 적성에 맞는 건지도 몰라서 도피처로 국외봉사를 선택했다.”라고 말했다.

  결론은 대박이었다. 10개월 독일에서 국외봉사를 했더니 원어민 독일어 교수의 말도 바로 알아듣고, 번역도 하게 됐다. 오 씨는 “너무 신기하고, 친구들도 저를 보고 다녀오고 싶어 한다. 언어는 확실히 느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대학생들은 국외봉사활동이 자신에게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이야기했다. 물론 적지 않은 기간을 봉사활동으로 보내다 보면 단점도 있게 마련이다.

  한 학생은 단점을 묻는 질문에 “1학년 다니고 봉사활동 다녀오고, 또 2학년 다니고 군대를 갔다가 3학년에 복학했는데, 학업에 지장을 받은 것 같다. 차라리 군대 다녀와서 바로 국외봉사를 가는 게 좋았다.”라고 말했다.

  또 러시아에서 유학을 온 레나(여·대3) 씨는 “작년에 인도 봉사활동을 다녀왔다. 다시 인도로 가고 싶을 정도로 좋았다. 봉사하면서 여유도 있고 자유스러웠는데, 다시 학교를 다니고 공부를 하는 게 많이 힘들다.”라고 솔직한 심정을 밝혔다.

  어릴 적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속담이 있듯 여러 경험은 인생에 있어 소중한 자산이 된다. 하지만 뚜렷한 목적 없이 무작정 떠난다면 소중한 1년을 낭비하게 될 수도 있다. 호연지기를 기를 수 있는 다양한 경험들은 우리 주변에서도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심각한 내적 갈등과 정신적 불안정 상태를 국외봉사활동으로 극복한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다음에는 이러한 사람들을 만나볼 예정이다.

/yongmin3@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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