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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정치 인터뷰
정용기, 자신 알아 준 대덕구민 위해 분골쇄신
기사작성 : 2020-03-22 12:02:49
이용민 기자 yongmin3@daum.net

  

 ▲정용기 미래통합당 대덕구 국회의원 후보.

  [시사터치 이용민 기자] = 대덕구청장 두 번의 행정경험과 국회의원 두 번의 정치경험을 두루 갖춘 정용기(58·現국회의원) 미래통합당 대덕구 국회의원 후보. 노무현 前 대통령 탄핵 정국의 힘든 상황에서 보수정당 후보로 대전에서 유일하게 대덕구청장에 당선되기도 했다. 그만큼 대덕구민에게 받은 은혜가 특별해 자신을 알아준 구민을 위해 분골쇄신의 각오로 일하고 있다.

  정용기 후보의 선거사무소를 19일 방문해 다 풀어놓진 못했지만 그동안 살아온 그의 삶과 정치 이야기, 대덕구를 위한 계획을 들어봤다.

  Q. 고향과 학창 시절 등 자기소개를 해달라.

  A. 고향은 충북 옥천군 청성면이다. 아버지가 철도청에서 근무해 2살 때 대전에 왔으니 성장한 곳은 대전이다. 학교는 신흥초등학교, 충남중학교, 대전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대전에 살다가 경찰대 진학하면서 고향을 떠나 학창생활과 직장생활을 객지에서 하게 됐다.

  경찰대에서는 초대 직선 학생회장을 했는데, 4학년 되는 해 1월 16일 자로 퇴학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24년 만에 명예회복을 했다. 명예졸업장을 받고, 졸업식에 가서 후배들에게 연설도 했으니 부끄러운 일로 퇴교당한 것이 아니다. 당시 전두환 정권에서는 용납하기 힘들었나 보다. 하지만 당시 NL, PD 일반 대학의 학생운동권과는 달랐다. ‘바람직한 경찰의 미래상, 국민의 경찰’이어야 하지 권력의 충견 역할을 해서는 안된다. 앞으로 ‘경찰의 미래는 어떠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독서토론 서클 아프락사스를 만들었는데 이게 당시 경찰 지휘부나 정권 입장에서는 용납할 수 없었나 보다.

  집에서는 외아들이, 4학년 된 아이가 갑자기 퇴교돼서 군에 입대하니까 거의 초상집 분위기였다. 군대를 바로 가서 동부전선 최전방 철책에서 면회 외출 외박이 안 되는 GOP에서만 꼬박 3년 동안 늘 실탄 75발, 수류탄 2개, 크레모아 격발기 2개를 갖고 군생활했다. 제대해서는 체력장도 다시 하고 학력고사도 다시 봐서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1학년으로 입학했다.

  연세대를 졸업할 때쯤 당시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이 생겼다. 우리 정치사에서 갖는 의미는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이 정치적인 화해를 통해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민주자유당 사무처 공채 1기 당료로 정당생활을 시작했다.

  올해가 정치권에 입문한 지 30년 되는 해다. 10여 년 간 당료 생활을 하고 2002년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가 두 번째 대선에 실패한 이후에 내 정치를 해야겠다는 생각에서 2003년 초 대덕구 지구당 위원장에 응모해 선출됐고, 2004년 17대 총선에 출마했다가(한나라당) 노무현 탄핵 역풍이 불면서 우리 쪽은 충청권이 전멸하고, 저쪽은 아무나 다 되는 탄돌이 탄순이들이 대거 국회에 등원하게 될 때 낙선의 아픔을 맛봤다.

   그리고 2년 후인 2006년에 대덕구청장 출마를 당으로부터, 당시 시당위원장인 강창희 위원장으로부터 강하게 권유받아, 처음에는 안 하겠다고 했는데 우여곡절 끝에 2006년 민선 4기 구청장이 됐다. 2010년에도 민선 5기 구청장이 돼서 8년간 구청장 생활을 하고, 2014년 대전시장 선거에 도전하는데 당시 친박들이 나를 컷오프 시켰다. 당시 대덕구 국회의원이 시장 선거에 출마하면서 국회의원 보궐선거가 있게 됐다. 2014년 이 보궐선거를 통해 19대 국회에 입문하고, 2016년에는 20대 국회 재선 의원이 됐다.

  Q. 정치를 하게 된 배경은?

  현실적으로 시작한 것은 공채 당료(민주자유당)로, 실무자였지만 정치를 시작했고, 실무를 하면서 이회창 총재를, 지연 학연이 아니라 그분이 법치주의를 완성하고 절차적 민주주의를 정착시킬 분이라 생각해 적극 지지하다 보니 그분을 가까이에서 모셨다. 그분이 두 번째 (대선에) 실패한 이후에 더 이상 누굴 돕는 게 아니라 내정치를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당시 조직책 공모할 때 대덕구에 응모를 해 당의 조강특위 심사를 거처 제가 조직책이 됐고 여기서 위원장에 선출됐다.

  대덕구청장 선거는 당시 당의 강한 요청으로 출마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이 테러를 당하고 ‘대전은요’ 하면서, 대전시장, 5곳 구청장, 시의원 후보 모두 당선되는 속에서 저도 당선이 됐다.

  Q. 두 번의 구청장과 두 번의 국회의원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업적은?

  A. 구청장 때 사실 대덕구 소외론으로 인해 시민의 관심이 많이 모아졌는데 다 얘긴 못하고 객관적인 성과는, 3년 연속 전국 최우수 평생학습도시, 전국 최우수 생동하는 생태도시, 내부청렴도 전국 1위 도시 등의 성과들이 있다.

  특히, 구청장 하면서 정치적으로 의미가 있는 것은 초선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대전은요’로 된 것이라면, 두 번째 2010년 재선은 우리 한나라당 후보가 전멸하는 선거였다. 시장과 나머지 4곳 구청장, 지역구 시의원 전원이 낙선하는 중에 대전에서 유일하게 한나라당 후보로 제가 당선됐다. 사위지기자사(士爲知己者死)란 말이 있다. 사람은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기꺼이 죽는다는 말인데, 정치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정용기를 믿어주시고 지켜주셨다. 그리고 살려주셨다. 이런 대덕구민을 위해 정말로 은혜에 보답하고 지역 발전을 위해 분골쇄신해야겠다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어 정말 열심히 일했다. 구민들 중에도 다는 아니지만 많은 주민들께서 이런 부분을 인정해주시면서 아주 특유의 신뢰 관계가 형성된 게 구청장을 하면서 의미가 있었다.

  재선의원을 하면서는 일단 친이·친박, 친박·비박간 치열한, 지끔까지도 이어지는 계파 싸움 와중에서 저는 단 한순간도 특정인에 줄 서는, 지금까지 선거를 치르면서 특정인 얼굴을 현수막으로 크게 붙여놓고 그 밑에 계보원인 것처럼 하는 그런 식의 정치를 한 순간도 한 적이 없었다. 저는 친박도 비박도 아닌 친국민계라는 입장을 일관되게 견지해왔고, 당이 정말 어려울 때인 탄핵 직후 그 어려운 상황 속에서 원내 수석대변인을 맡아 아무도 언론 TV 매체에 출연하려고 안 할 때 당의 입이 돼 자유우파를 살려내기 위해서 나름 혼신을 다했다. 또 김병준 비대위 체제에서 당이 다시 한번 위기에 빠졌을 때 나경원 원내대표의 러닝메이트로 정책위 의장으로 선출돼 자유우파의 정책적인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정책 대안을 제시하며, 당을 살려내기 위해서 나름의 역할을 한 데 의미가 있다.

  그 와중에 재선의원을 하면서 구청장을 하는 동안에 풀어내지 못한 대규모 사업들을 다 풀어냈다. 예를 들면 충청권 광역철도 1단계 사업, 회덕 IC 신설 사업, 신탄진 인입선로 이설 사업 등이 다 해결돼 예산이 확보되거나, 설계가 완료되거나, 사업이 시작되거나 하는 단계까지 오도록 지역의 주요 현안사업 대부분을 풀어낸 것이 재선의원을 하면서 의미 있는 일이었다.

  Q. 3선 국회의원이 되면 국가와 대전 대덕구를 위해 어떤 일들을 하시겠나?

  A. 이번 선거에 구호로 사용하는 게 ‘민생먼저, 경제우선, 대덕발전’ 세 가지다. 이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로 인해 거기에 엎친데 덮친 격으로 닥친 코로나19 사태로 인해서 민생이 완전히 파탄 상태에 이르렀다. 결국 이를 살려내는 데 국회의원으로서 나름 최선을 다해야 된다. 그 방법론이 이 정부가 갖고 있는 반 시장적 좌파적인 해결책으로는 절대 해결될 수 없다. 친 시장적 이런 정책으로 국가정책이 선회될 수 있도록 하는 일에 매진해야 할 것이다.

  지역발전을 위해서는 대덕구 중간 위치에 있는 연축동에 그린벨트가 있는데 여기를 해제하고 구청을 대덕구 중앙인 연축지구에 이전하려는 계획을 처음부터 입안하고 지금까지 추진해왔던 사람이 저다. 최근에 국가균형발전 특별법이 개정돼서 혁신도시가 대전으로 지정될 수도 있는 여건까지 돼 있는데 이 정권이 일단 혁신도시를 지정해야 한다. 선거때 이용만 하고 법은 통과됐어도 안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이 정권이 혁신도시를 지정하도록 노력하고, 지정되면 수도권 공공기관을 연축지구 그린벨트 해제지역, 대덕구청이 옮겨갈 지역으로 유치하겠다.

  또 사실상 확정 상태인 회덕 IC를 완성하고, 충청권 광역철도 1단계 사업은 확정됐는데 2단계 사업을 추진해 신탄진에서 북쪽으로 세종, 청주공항, 천안까지 연결시키는 사업을 추진하겠다. 이를 대덕발전 비전으로 표현한다면, 대전의 동북쪽 변방에 위치해있던 대덕구가 고속도로, 철도와 같은 교통인프라의 대대적인 변화, 그리고 혁신도시사업 등을 통해 대전, 청주, 세종이라는 거대 도시시대, 메갈로폴리스 시대의 중심도시로 지리적 가치가 완전히 변화되는 시대를 열어가자는 게 저의 대덕발전 비전이다. 3선이 된다면 지금까지 쭉 해왔지만 이 비전을 하나씩 가시적으로 구민이 느끼실 수 있도록 만들어내는 일을 해랴 한다.

  다시 말해 대전, 청주, 세종의 중심도시 대덕구로 발전하는 방법은 고속도로 IC, 외곽도로망, 철도의 전철화 등이 이뤄지면, 경쟁력이 갖춰지게 되므로 혁신도시 공공기관 유치에도 경쟁력이 있게 된다. 공공기관이 1개가 오는 게 아니기 때문에 대전역세권으로 가야 할 게 있으면 가는 거고, 여기도 연축지구라는 주거행정타운이 조성되니까 입주할 수 있는 공간도 확보돼 이곳의 경쟁력에 부합하는 기관은 이곳으로 오게 된다. 저는 재선 하면서 국방신뢰성센터를 우리 지역에 유치하기도 했다.

  Q. 경쟁 상대인 더불어민주당 박영순 후보의 장점과 단점을 꼽는다면?

  A. 솔직히 잘 모른다. 박 후보를 언급하는 게 적절치 않다. 상대 후보의 장점과 단점보다 자기 일을 열심히 하면 된다. 내 일과 내 비전을 주민께 알리는 게 중요하지 상대 후보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데 관심 없다. 잘 모르는데 언급하는 것도 도리에 맞지 않다.

  Q. 마지막으로 대덕구 유권자에게 한마디...

  A. 정치적으로 그때뿐만 아니라, 그 이후에 국회의원 두 번 공천받을 때도 사실 친박 진영에서 날 공천 주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원 두 번 공천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당내 경쟁자에 비해서 여론조사에서 워낙에 압도적이었기 때문이다. 누군가 친박 라인으로 나를 밀어내고 공천받으려고 했는데 워낙 압도적이라 당에서 날 공천 줄 수밖에 없었다. 그때도 역시 대덕구민께서 저를 지켜주신 것이다. 한두 번도 아니고 정치적 위기 때마다 저를 지켜주시고 알아주셔서, 사람은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기꺼이 그러는데 구민께 받은 그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된다. 앞으로도 죽는 날까지 대덕구민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 분골쇄신하겠다.

  

 ▲길거리 선거운동을 하고 있는 정용기 후보.(사진:정용기 선거사무소)

/yongmin3@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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