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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칼럼
서구 문명 중심의 역사에 대한 비판
기사작성 : 2016-12-10 20:03:57
김태원 기자 tai0913@hanmail.net

 [시사터치 김태원 칼럼] = 서구 문명의 기원은 그리스 문명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그리스 문명은 이웃의 로마 문명에 전파되고 중세 유럽의 패자는 이탈리아에서 르네상스가 일어났다면 대외 침략에 앞장서 아메리카 대륙을 식민지화한 스페인과 포르투갈이었죠. 16세기 절대왕정 시기의 패자는 프랑스였지만 근대 사회이후에는 영국이 유럽을 넘어 전 세계의 패자로 군림하게 되었습니다. 이윽고 1차 대전이후 미국으로 세계의 패권이 이동하였습니다. 그래서 유럽인의 관점에서 보면 문명의 중심이 동쪽에서 흘러와서 서쪽으로 이동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논리를 바탕으로 하면 앞으로의 문명의 중심은 환태평양 문명권이라고 말합니다. 특히 동아시아는 일본과 중국이 미국과 더불어 21세기에 세계 경제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동아시아가 21세기 세계 문명의 중심이 될 거라는 전망은 한국이 동아시아에 속해있기 때문에 매력적으로 들립니다. 구체적인 통계수치도 이런 전망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현재 미국에 맞설 유이(唯二)한 강대국으로 꼽히죠. 일본은 중국이 부상하기 이전에 경제 규모로 미국 다음으로 세계 2위에 해당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주장은 우리의 입장에서는 듣기는 좋으나 이를 뒷받침할 타당한 근거가 있는 걸까요?

 문명의 중심을 설정하면 나머지는 변방이 됩니다. 문명은 중심지에서 주변으로 전파되는 형태로 확산된다는 것이 그동안의 견해였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은 다름아닌 유럽이었죠. 유럽은 근대화 과정에서 습득한 과학 기술의 발달과 수많은 나라로 나뉘어 끊임없는 전쟁으로 발전한 압도적인 군사력에 힘입어 타 지역에 대해 대외침략을 하였습니다. 먼저 15세기 끝무렵과 16~17세기를 거치면서 아메리카 대륙과 아프리카 대륙을 유린하고 인도양과 태평양으로 진출하여 인도와 동남아시아를 식민지화합니다. 마침내 1840년 아편전쟁을 일으켜 중국의 문호를 강제로 개방하는데 성공하죠.

 서구 제국주의는 이렇게 대외팽창을 하는 것과 함께 유럽 문명의 절대화를 꾀합니다. 유럽 문명은 그 출발부터 다른 문명에 비해 우월하다는 주장을 펼치고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학문적 체계를 세웁니다. 유럽이 대외팽창을 하는 과정에서 유럽과는 다른 문명과 접촉하면서 그 문명의 내용을 맹렬하게 수집합니다. 이 과정에서 박물학, 인종학과 같은 학문이 성립하면서 제국주의 침략을 정당화하는 역할을 하죠. 그러한 노력의 결과물이 바로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이라고 합니다. 오리엔탈리즘이란 유럽인들이 타 지역을 침략하고 정복자이자 지배자로서 자신들의 관점으로 이해한 비유럽지역에 대한 왜곡된 인식과 태도 등을 가리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서양은 물질적이고 동양은 정신적이라는 주장이나 진보적인 서양에 대해 정체된 동양이라는 도식 등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 대해 다음과 같은 반박이 가능합니다. 먼저 세계 지도를 놓고 보면 유럽은 유라시아 대륙(유럽과 아시아를 포함한 대륙)의 서쪽 변방에 치우쳐 있습니다. 중세를 암흑기라고 하는 주장은 유럽의 역사에 한정된 수식어에 불과합니다. 같은 시기의 서아시아는 이슬람의 흥기와 더불어 전성기였으며, 중국은 당 왕조의 전성기였고, 인도 또한 힌두교의 성립과 더불어 인도 고유의 문명이 완성되는 시기에 해당합니다. 같은 시기 유럽은 낙후된 변방에 불과했습니다.

 두 번째로 바스코 다 가마가 1498년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 인도에 도착한 것을 계기로 비로소 세계 무역망이 성립하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다 가마 일행이 인도에 도착하기 이전에 서아시아 홍해에서 인도양을 거쳐 중국의 광동항으로 이어지는 소위 “바닷길‘로 불리는 무역망이 가동되고 있었습니다. 또한 다 가마 일행이 인도에 가지고 온 물건은 품질이 너무 뒤떨어져 당시 인도의 캘리컷에서 팔리지 않았을 정도의 품질이었다고 합니다. 오히려 유럽의 진출은 인도양을 중심으로 하는 교역망을 파괴하고 이 지역을 군대를 앞세워 식민화하였습니다.

 세 번째는 근대사회를 성립시킨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에 대한 내용입니다. 분명 서구 문명이 근대 이후 세계사를 주도한 것은 맞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역사 인식에 대하여 착각하는 것에 대하여 다룰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과거의 사실은 정해져 있어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과거는 현재에 의해 끊임없이 그 내용과 평가가 변합니다. 새로운 사료의 발굴에 의해서뿐만 아니라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에 따라서 평가가 달라지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서구 문명이 근대사회를 열었기에 서구 문명은 그 출발에서부터 타 문명에 비해 우수했다는 주장이 널리 퍼져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근대 이후 서구 사회가 자신의 뿌리를 미화하기 위해 조작한 것에 불과합니다. 나아가 산업혁명의 원인을 온전히 서구 문명 내부에서 찾는 것을 넘어서서 서양과 동양의 상호작용에 의해 촉발된 것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영국이 무력으로 인도를 식민지화 하였지만 값싼 인도산 면직물이 영국에 들어오자 영국의 섬유산업은 위기를 맞이합니다. 따라서 값싼 노동력으로 생산된 인도산 면직물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공장제 수공업(매뉴팩처)이 공장제 기계공업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산업혁명이 촉발되었다는 것이죠. 산업혁명은 영국만의 산물이 아니라 의도하지 않았지만 비유럽 지역의 강제된 협조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주장이 보다 설득력있게 들립니다. 심지어 경제적 부에 있어서 유럽이 중국을 앞선 것이 겨우 19세기에 들어와서였음이 실증적 연구를 통해 밝혀졌습니다. 서구 문명이 비서구 지역에 앞선 경제적 발전은 200여년에 불과합니다. 그 우위도 점차 간격이 좁아져서 특히 동아시아 지역에서 새로운 경제 중심지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다음회에서는 기원전 8세기에서 기원전 3세기에 나타난 현상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이 시대를 표현하는 용어로 축의 시대(Axial age)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tai091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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