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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칼럼
한국 현대사의 두 번째 혁명
기사작성 : 2016-12-13 04:39:20
김태원 기자 tai0913@hanmail.net

  

 ▲지난달 20일 갤러리아백화점 타임월드점(둔산동) 앞 대덕대로에서 열린 박근헤 대통령 퇴진 촉구 집회 모습.(사진:시사터치DB)

 [시사터치 김태원 칼럼] = 2016년 11월에 우리는 한국 현대사에서 1960년 4.19 혁명에 이어 두 번째 혁명의 진행을 보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다음의 세 가지 측면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자 합니다. 먼저 이 현상이 나타나게 된 근인(近因)과 원인(遠因)을 따져보고 두 번째로 세계사상 이와 비슷한 사례를 찾아 비교합니다. 세 번째 이러한 작업을 바탕으로 앞으로 이 혁명이 어떻게 전개되는 것이 바람직한지를 모색하고 나아갈 방향을 설정할 때입니다. 이 글은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에서 쓴 것이고 현 사건에 대해 일부분에 대한 것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또다른 분석들을 통해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고 있는 혁명의 보다 총체적인 모습을 알아가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는데 그 몫은 독자 여러분의 것입니다.

 첫 번째 직접적인 원인으로는 최순실의 국정 농단입니다. 딸 정유라의 이대 부정 입학에서 시작된 나비의 날갯짓이 대통령 탄핵사건이라는 폭풍으로 이어진 것이지요. 따라서 이런 현상을 뒷받침할 근원적인 원인을 살펴봐야 합니다. 그것은 사회적 불평등의 심화가 아닐까 합니다. 역사에서 우연과 필연이라는 두 요소가 매우 극적으로 결합되어 나타나는데 우연적인 현상에만 매몰되면 그 배경에 도사리고 있는 필연적인 부분을 놓치기 쉽습니다. 현재의 상황과 비교할 만한 것으로 1789년 일어난 프랑스 대혁명을 들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원인과 두 번째 원인은 서로 연관되어 있습니다. 프랑스혁명의 발발 원인(原因)으로 당시 프랑스 민중이 굶주림과 같은 극한 빈곤에 의한 것이었다는 주장은 지금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합니다. 오히려 당시 프랑스는 꾸준한 경제발전에 힘입어 국민 전체의 소득이 증가하고 있었죠. 따라서 경제 성장의 부작용인 빈부 격차가 확대되었기 때문에 혁명이 발발했다고 보는 것이 다수 학자들의 주장입니다. 그리고 오늘의 대한민국도 경제 성장으로 국민들의 부는 증가했으나 오히려 빈부 격차는 더 벌어졌지요.

 사회적 양극화가 얼마나 위험한 현상인지 역사적으로 증명되는 사례는 매우 많습니다. 가령 세계 최초의 농민 봉기라고 이야기되는 중국 최초의 통일왕조인 진(秦) 말기의 진승과 오광의 난이 그것입니다. 이 농민 봉기의 진정한 원인은 가혹한 형벌에 대한 반발과 감당할 수 없는 수탈로 일어났습니다. 전(前) 근대 사회의 농민 봉기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지배층의 탐욕스러운 수탈의 결과입니다. 한국사에서는 신라 말 진성여왕 때 원종과 애노의 난과 적고적(赤袴賊)의 활동이 있었고, 조선말인 1811년 임술 농민봉기와 1862년 홍경래를 중심으로 한 평안도 농민봉기가 있습니다. 유럽에서는 독일 농민전쟁(1524-25년)등이 유명하지요. 근대 이후로는 사회 계층의 대부분이 농민에서 노동자로 바뀌면서 노동자 중심의 봉기가 빈발하게 일어나지요. 대표적인 것이 프랑스혁명과 러시아혁명을 들 수 있습니다.

 오늘날 신분제 사회에서 볼 수 있는 수탈은 사라졌지만 기득권층이 권력층과 결탁하여 일반 민중을 수탈하는 것은 유사합니다. 사실 오늘날의 한국은 새로운 신분사회로 접어들었다는 주장이 심심치 않게 나옵니다. 그만큼 우리 사회는 재산과 학력과 권력 같은 요소로 사회 구성원을 구분하는 것이 일상화된 지 오래이지 않은가요? 이 주제는 또다른 글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독자들은 아마도 루이 16세의 왕비인 마리 앙투와네트와 박근혜, 최순실의 비교가 더 흥미로울지 모르겠습니다. 신분제 사회의 왕과 왕비를 민주공화국의 대통령과 사적 관계의 최순실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기회가 된다면 이 역시 다음 기회에 관련된 글을 올려보겠습니다.

 세 번째 탄핵이 가결되는 것과 상관없이 저는 이미 혁명이 시작되었다고 봅니다. 따라서 이 혁명이 박근혜 정권의 붕괴 외에 앞으로 어떻게 전개되어야 바람직한 방향인지에 대한 고민입니다. 당연히 보다 민주적인 정권이 새로이 출범하여야 하겠고, 사회적 불평등의 해소가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 그 안에 청년 실업의 해소와 세계 최고라는 노인 빈곤 문제의 해결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과도한 국방비의 대폭적인 감축과 여기에서 발생한 재원을 사회안정망 확충에 전용되어야 할 것입니다. 결국 지금과 같은 남북한의 군사적 대결구도를 청산하고 평화적 통일을 달성하는 쪽으로 남북관계가 바뀌어야 할 것입니다.

 아마도 탄핵 이후에 한국이 나가야 할 바람직한 방향에 대한 우리의 논쟁은 이제 시작한 것에 불과합니다. 이 논쟁은 보다 많은 사람들이 아주 긴 시간 동안 참여하여 전개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인내심을 갖고 이 과정을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참고로 요즘 집단 지성을 많이 이야기하는데 지성이라는 말이 들어가 이 또한 지식인의 전유물처럼 느끼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한참 잘못된 것입니다. 앞서 부당한 지배층에 대한 저항에 앞장선 농민과 노동자들은 지식인이 아니죠. 물론 썩은 권력자들은 여전히 민중을 개, 돼지로 보겠지만 사실 지식인들의 사고를 이끄는 것은 바로 저 민중입니다. 그들의 생각과 행동을 대변하는 역할을 지식인이 수행하는 것입니다. 특히 인문학은 바로 이러한 능력을 키우기 위한 목적으로 성립된 학문이라는 저의 주장이 지나치게 과격한 것은 아니겠죠?

/tai091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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