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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칼럼
축의 시대-(중국2)
기사작성 : 2017-01-11 07:26:02
김태원 기자 tai0913@hanmail.net

 [시사터치 김태원 칼럼]  = 다시 춘추전국 시대에 대해 개괄적으로 정리를 하겠습니다. 서주(西周, 주의 수도는 서쪽의 호경인데 후에 장안으로 한(漢)부터 당(唐)까지의 수도였다.)시대 초기에 1,800여의 제후국이 있었습니다. 이 서주가 외적의 침입으로 동쪽의 낙읍으로 이주하였는데 이때부터 동주(東周)시대라고 하고 춘추시대의 시작이 됩니다. 1800여의 제후국(이를 도시국가로 보기도 합니다.)은 춘추시대 중엽에 140여 개국이 되고, 춘추말기에는 10여 개국으로 줄었습니다. 이 중에서 가장 유력하였던 것은 제․진․초․오․월로 이를 춘추 5패라고 하는데, 이 시기에는 네 마라의 말이 끄는 마차에 세 명의 군인이 타고 싸우는 것이 전쟁의 주된 모습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시기 국력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마차의 숫자(승(乘))로 따졌는데 만승(萬乘)은 천자를, 천승(千乘)은 제후를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되었죠.

 춘추시대는 아직도 주대의 봉건질서가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비록 주왕실은 쇠퇴하였으나 낙양을 중심으로 한 동주체제하에서 지방의 제후들은 존왕양이(尊王攘夷), 즉 주 왕실을 받들고 오랑캐를 물리친다고 하는 대의명분을 내세우고 서로 패권을 다투었습니다. 이 존왕양이는 근대 일본에서 다시 중요한 구호로 등장합니다. 주왕실은 이미 소국으로 전락하였으나 주왕실의 종교적 권위와 위엄은 상존하고 있었기 때문에 매년 천(天)에 대한 제사(祭祀)가 거행되었습니다. 열국(列國)사이에 상호 공벌 병합과 약육강식의 소용돌이 속에서 주왕실은 이를 제어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춘추시대의 각국은 독립주권국가로 성장 발전하면서 모든 국제적 분쟁은 무력의 강약에 의해 좌우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중원(中原)은 황하 중류 지역으로 현재의 서안(주의 호경, 한당의 장안)과 낙양을 중심으로 하는 곳으로 이 지역의 여러 나라들은 서주시대의 예교문화를 이어받아 문화가 고도로 발달하였으며, 서주시대의 봉건적 질서와 관습이 상존하고 있는 선진지역이었습니다. 중국(中國)은 본래 중원지역의 나라를 가리키는 용어였습니다. 그러나 이 중원 열국(列國)은 황하 양안을 중심으로 상호 밀집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성장과 발전이 곧 한계에 달하여 상호 인접국이 되면서 소국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주변에 위치한 제후국은 중원의 전통문화와 관습에 상대적으로 덜 얽매여 독자적인 정책을 추진하기가 수월하였으며 또한 주변 황무지의 개간, 주변의 미개한 이족(夷族)을 정벌 또는 포섭을 통해 무한히 팽창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중원의 나라보다는 주변 변경지역에서 패권 국가가 등장하고 중원의 나라는 소국으로 전락하였습니다. 앞서 춘추5패중에서 진(晉)은 중원의 국가로 문공(文公)때 제(齊) 다음으로 패자로 올라섰지만 이후 패자였던 초, 오, 월은 중원에서 떨어진 변방에 해당합니다.

 춘추시대에는 주 왕실의 혈연을 각지에 제후로 분봉(分封)하였기에 각국간의 혈연적 연대의식과 공동문화의식, 그리고 동일조상을 제사지낸다는 주술적 종교관에 기반하였습니다. 이것은 그리스 도시국가가 올림포스 산에서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고 같은 조상의 후예라는 동포의식을 다짐하기 위해 경기를 열었던 것과 매우 흡사합니다. 이러한 종교와 군사 공동체는 고대 국가의 공통적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이런 현상을 볼 수 없을까요? 미국은 9.11테러의 보복으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면서의 미 대통령 조지 부시는 제 2의 십자군이라고 언급했었습니다. 현재 미국을 중심으로하는 서방세계와 이슬람 세계가 맹렬히 충돌하고 있는데 춘추전국시대와 닮은 느낌이 들지 않나요? 그렇다면 춘추전국시대의 그 혼란을 극복하려는 의지에서 비롯한 수많은 사상들은 오늘날에도 그 내용을 되새김질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어쨌든 춘추시대의 국제질서를 회맹(會盟)적 국제질서라고 하는데 맹(盟)을 통하여 대외적으로 존왕양이의 대의명분을 내세워 소국을 복속시키는 방법을 취하였습니다.

 여러 제후들을 규합하여 회맹이라는 동맹체를 만들고 그 우두머리가 되어 사실상 중원을 지배하는 패자가 되고자 했던 제, 진, 초, 오, 월 등을 춘추 5패라고 합니다. 제일 먼저 제의 환공이 패업을 이룬 후 진의 문공이 패자가 되었으나, 이후 남방 민족의 혈통을 이은 양쯔강 유역의 초가 세력을 얻어 장왕이 패자가 되었습니다. 드디어 재미있는 것은 제나 진의 경우 지배자의 칭호가 공(公)이지만 초, 오, 월의 경우 왕(王)을 자처합니다. 이는 주(周)나라와 대등하다는 의식이 반영되어 있다고 할 수 있죠. 중원에서 멀수록 주 왕실에 대한 충성도가 엷어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춘추 후반기에는 초, 오, 월의 남방국가들이 패자로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양쯔강 이남 지역도 중화문명권에 포함되었습니다. 남방의 오와 월이 갑자기 패자로서 성장한 것은 뛰어난 제련술과 양쯔강 지역의 많은 인구와 농업의 발달에 있었다고 합니다.

 전국(戰國)시대의 시작은 춘추 시대의 진(晋)에서 가신이었던, 한․위․조씨가 영토를 분할하여 주 왕에게 제후로 인정받게 된 기원전 403년 이후를 가리킵니다. 제에서도 가신인 전씨가 나라를 빼앗았는데, 이들 4국과 춘추 시대부터 있었던 연․진(秦)․초 삼국이 패권을 다투게 되었습니다. 이를 전국 7웅이라 합니다. 전국 시대 전기에는 위와 제가, 후기에는 조와 진이 유력하였습니다. 연(燕)은 지금의 요서 지역에 있었던 나라로 한국사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기원전 3세기경 연장(燕將) 진개(秦開)가 고조선을 침략하여 고조선의 중심지가 요령지방에서 대동강 유역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철이 다량으로 생산된 전국시대에는 철제 무기를 지닌 보병을 주력으로 하는 대규모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춘추시대에는 아직 존왕양이의 대의명분이 정치 사회를 지배하였고 주대의 정치질서인 예가 어느 정도 존중되었습니다. 그러나 진(晉)의 멸망을 계기로 정치풍토는 신하가 주군을 멸하고 강대국이 약소국을 공벌하는 약육강식의 살벌한 경쟁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왕’은 오직 주왕 만이 칭할 수 있었는데 위의 혜왕이 처음 ‘왕’을 칭하자 이로부터 형식적으로나마 있던 주왕실의 권위도 없어졌을 뿐 아니라 전국이 모두 독립국 행세를 하였습니다. 춘추시대 170여 국은 전국시대에는 국가간의 전토와 인민을 쟁취하기 위한 끊임없는 전쟁과 정복 속에서 멸국치현(滅國置縣)의 현상이 반복되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전국시대의 이른바 전국 7웅이 등장한 것이죠

 전통적으로 춘추에 근거를 둔 유교적 역사관으로 인해 이 시대를 부정적으로 인식하였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난세였지만 사회, 경제, 문화 등에서 고대사회를 재편성하고 진(秦)․한(漢) 통일 제국 형성의 기반이 마련된 시기로 긍정적으로 인식하기도 합니다. 모든 역사적 사건은 시기가 다르고 사람이 다르기 때문에 사건마다 고유성과 절대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거시적 관점에서 보면 유사성이 나타나지요. 이를 역사적 법칙이라고 하지만 과학 법칙처럼 절대적이지는 않습니다. 어쨌든 여러 소국이 합쳐져 통일 왕국이 성립하는 것이 하나의 패턴으로 작용하는 것은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시대적 배경을 다루다보니 정작 제자백가에 관한 내용은 시작도 못했군요. 다음에 제자백가에 대해 본격적으로 다루겠습니다. 

/sisatouch2@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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