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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칼럼
축의 시대-(그리스)
2017-03-03 11:39:26
김태원 기자 tai0913@hanmail.net


 [시사터치 김태원 칼럼] = 그리스 문명의 성립.

 그리스라는 명칭은 로마인들이 그리스를 가리켜 붙힌 이름인 그라에쿠스(Graecus)에서 비롯하였습니다. 그리스인들은 스스로를 헬라스라고 했는데 헬렌의 자손인 헬레네스의 땅이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헬라스라고 해야 마땅하나 오랫동안 그리스로 불러온 탓에 일단 그리스라는 명칭으로 설명하려고 합니다. 그리스 문명은 몇 번의 전쟁을 분기점으로 시기를 나누기도 하는데 트로이 전쟁과 페르시아 전쟁, 펠로폰네소스 전쟁과 카이로네이아 전투를 들 수 있습니다. 저도 그리스 역사를 이를 기준으로 서술하려고 합니다.

 그리스 역사를 트로이 전쟁(기원전 13세기 경)을 기준으로 이전의 크레타 문명과 미케네 문명이 존재하였습니다. 지중해의 동쪽, 그리스와 터키, 크레타 섬 사이의 바다를 에게(Aege) 해라 합니다. 에게 해는 유럽-아시아-아프리카의 세 대륙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그 한 가운데에 크레타 섬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다도해처럼 에게 해에 산재해있는 섬을 따라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으며 해역 전체가 아시아와 유럽의 접촉점에 위치하고 고대문명의 중심지의 하나인 이집트에도 가까웠기 때문에, BC 3000년경부터 이 해역을 중심으로 한 에게문명이 생겨난 것으로 추측합니다. 플라톤은 그리스 문명을 연못 둘레에 있는 개구리에 비유했던 것처럼 그리스인은 이 바다의 해안을 따라 삶을 꾸렸습니다.

 에게 문명은 크게 두 단계로 구분되는데 전기 문명은 BC 3000-BC 1400으로 미노아 문명 또는 크레타 문명이라고 하고 후기 문명은 BC 1400-BC1200으로 미케네 문명이라고 합니다. 두 문명은 크게 대비되는 것이 크레타 문명이 개방적인 해양문명이었다면, 상대적으로 미케네 문명은 폐쇄적인 성격이었습니다. 지리적인 위치 때문에 크레타 섬의 사람들은 일찍부터 오리엔트 지방과 유럽 대륙을 오가며 무역에 종사했습니다. 무역을 하던 크레타 사람들은 이들 오리엔트의 선진 문물을 수용하여 미노아(Minoa) 왕국을 건설하였습니다. 훗날 그리스 반도 북쪽에서 이주한 사람들이 반도의 남부에 자리잡고 미케네 왕국을 세우고, 크레타 문명을 계승하였습니다. 이 두 문명인 크레타 문명(미노아 문명)과 미케네 문명을 합하여 에게 문명이라 합니다. 에게 문명은 오리엔트의 선진 문명을 받아들여 그리스에 전해준 문화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 흔적을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영역이 조각부분인데 초기 그리스의 조각은 이집트의 신상을 모방한 것에서 점차 그리스 고유의 모습이 짙어져감을 볼 수 있습니다.

 크레타 문명의 기원에 관환 신화는 에우로페와 관련이 있습니다. 난봉꾼 제우스가 페니키아왕의 딸 에우로페(Europe)의 미모에 반해 황소로 변신해 유혹합니다. 황소 등위에 태우고 바다를 건너 내린곳이 지금의 크레타 섬이었고 여기에서 세 아들을 낳고 이들에 의해 크레타 문명이 탄생합니다. 에우로페는 셈어의 해가 지다라는 뜻의 ereb에서 나온 것으로 유럽(Europe)의 어원이 됩니다. 아시아는 아카드어로 해가 뜨다라는 as(아스)에 땅을 의미하는 ia가 붙어서 asia가 되었습니다. 아스는 우리말의 아침이나 일본어의 아사와 비슷하여 흥미롭습니다. 해가 뜨고 해가 지는 것의 의미를 가진 아시아(Asia)와 유럽은 라틴어에서는 OrientOccident로 변형이 되었죠.

 크레타 문명의 멸망에 대해서는 자연재해설과 외부 침략설로 나뉘는데 아마 둘 다가 원인으로 작용해서 멸망한 것이 아닐까합니다. 자연재해설은 기원전 1450년 경 테라섬의 화산폭발이 원인이 되어 무려 200m정도의 해일이 일어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이 엄청난 재앙으로 크레타 문명이 치명상을 입었고 뒤이어 미케네 인들의 침략으로 멸망한 것으로 봅니다. 테라섬(또는 산토리니섬)의 화산 폭발은 많은 화산재를 주변지역에 퍼뜨렸는데, 이것이 이집트에도 기상이변을 가져왔고 이러한 내용이 모세가 일으킨 이적으로 둔갑한 것으로 보고 있기도 하죠.

 그런데 크레타 문명을 뒤이은 미케네 문명의 멸망은 베일에 가려져 있습니다. 이전에는 미케네 문명을 이룩한 아카이아인의 뒤이어 도리아인이 남하하여 미케네 문명을 정복한 것으로 보았지만, 연구가 깊어지면서 바다의 사람들, 소위 말하는 해양민족의 침략에 의해 멸망한 것으로 추론합니다. 그런데 이 해양민족의 정체에 대해서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수수께끼같은 세력이라는 점입니다. 이들의 침략으로 그리스 문명은 수세기 동안 암흑기에 접어들게 될 정도로 그 파괴의 정도는 극심했는데, 이들의 활동에 의해 동지중해의 많은 나라들이 궤멸적 타격을 입었던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스 반도에 그리스인이 남하한 것은 크게 두차례에 걸쳐있다. 1차 남하는 BC 2000년경 동방 방언군에 속하는 이오니아인과 아이올리아인(아카이아인 포함)이 남하하여 아카이아인에 의해 미케네 문명이 성립하고 2차 남하는 BC 1200년경 도리아인이 급격히 남하하여 BC 1100년경 미케네 문명을 파괴하였습니다. 에게 해 문명에서 사용된 문자는 두 가지인데 미노아 문명과 관련된 선상 A 문자는 아직까지 해독되지 않고 있으나, 미케네 문명과 관련된 선상 B 문자는 그리스어 계통이라서 현재 해독이 되어있습니다. 결국 미노아 문명(크레타 문명)은 언어적으로 그리스 계통과는 다르다는 것인데 소아시아나 북아프리카 쪽에서 이주한 사람들이 아닐까 추측하고 있습니다.

 미케네 문명은 도리아 인의 남하 이전에 정체 불명의 해양 민족의 침략으로 커다란 타격을 받았는데, 뒤이은 도리아 인의 침략으로 결정적으로 붕괴되었습니다. 그 파괴가 심했기에 미케네 문명의 중심이던 왕궁이 파괴되고 문자가 잊혀짐으로써 오랜 세월 동안 문자가 없는 시대가 계속되어, BC 1100~BC 750년경까지의 이 시기를 편의상 암흑 시대라고 합니다. 이 시기가 끝나는 시점인 BC 8세기 경부터 폴리스가 성립하기 시작하여 진정한 그리스의 역사가 전개되는 것이죠.

 호메로스(Homeros, BC 800? ~ BC 750)일리아드(Ilias)’오뒷세이아의 저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두 작품은 트로이 전쟁을 주제로 한 거대한 서사시로 그리스인의 세계관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작품에 구사된 언어나 작품 중의 여러 가지 사실로 미루어 보아 앞의 두 작품의 성립연대는 BC 800BC 750년경으로 보고 있습니다. 일리아스는 도시 트로이의 별명 일리오스(Ilios)에서 유래한 것이며, ‘일리오스 이야기라는 뜻입니다. 10년간에 걸친 그리스군의 트로이 공격 중 마지막 해에 일어난 사건들을 노래한 서사시로, 그리스인들에겐 오뒷세이아(Odysseia)와 함께 그리스 민족의 단일성과 영웅적 자질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유럽인의 정신과 사상을 낳은 원류가 되고 있습니다. 이 시는 사고하는 방식에 있어 신의 눈이 아닌 인간의 눈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함으로써 인간주의적 접근을 시도한 최초의 작품이며, 냉혹한 사실주의적 표현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유럽 서사시의 모범으로서 라틴 문학을 거쳐 유럽 문학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일리아스>10년에 걸친 트로이 전쟁 가운데 마지막 며칠 동안의 이야기에 집중되어 있다. 이 서사시의 실제 주인공은 그리스의 영웅 아킬레우스로 총사령관 아가멤논과 싸우고 나서 더 이상 전투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였으나, 친구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을 계기로 전투에 복귀하여 헥토르를 죽여서 원수를 갚는다. 그러나 그는 아킬레스 건에 화살을 맞아 죽음에 이르고 오딧세우스의 제안으로 트로이 목마를 이용하여 결국 트로이를 함락하였다. 이러한 내용을 담은 일리아스는 신화학자들에 의해 분노의 책으로 지칭되기도 합니다.

 <오디세이아>는 흔히 <일리아스>의 속편으로 간주되는데, 트로이의 정복이후 오디세우스는 이런저런 불운으로 10년 동안이나 더 바다를 떠도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오랜 방랑 끝에 고향에 돌아간 그는 오랜 세월 동안 자기 집을 유린한 자들에게 복수하고 아내와 재회하는 것으로 서사시는 마무리되죠. 오뒷세우스의 영어명은 율리시스(Ulysses)입니다. 

 헤시오도스(Hesiodos, BC7세기)는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인으로 농경기술과 노동의 신성함을 서술한 <노동과 나날>은 설화성(說話性)과 목가적 서술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헤시오도스는 호메로스와 달리 그의 생애가 비교적 자세히 알려져 있습니다. 헤시오도스가 그의 작품 <노동과 나날>에서 자신의 집안 등에 대해 밝히고 있기 때문이죠. 작품으로는 <신통기(테오고니아)>, <노동과 나날> 등을 남겼다.

 신통기(Theogonia, 神統記)는 천지창조에서 신들의 탄생 및 계보 그리고 인간의 탄생에 이르는 과정을 계통적으로 서술한 작품입니다. 독자에게 지식과 교훈을 전달한다는 점에서 교훈시로 분류되기도 하는데 혼돈의 태초 카오스(Khaos)로부터 암흑 에레보스(Erebos)와 어두운 밤 뉙스(Nyx), 천공 아이테르(Aithêr)와 낮 헤메레(Hêmerê)가 나눠지며, 빛과 어둠의 사이로 땅 가이아(Gaia)가 움터 나와 지평으로 퍼지고 하늘 우라노스(Ouranos)가 열리는 광경을 장중한 서사시의 운율에 담아 단숨에 그려내고 있습니다. 땅 가이아는 왕성한 생산력으로 하늘과의 교접을 통해 대양 오케아노스(Okeanos)와 하늘의 숱한 별들과 땅의 온갖 현상들을 낳고, 마침내 시간 크로노스(Khronos)를 낳습니다. 밤의 여신 뉙스(Nyx)''이라는 뜻으로 '야상곡'을 뜻하는 단어 '녹턴(nocturn)'에 흔적을 남기고 있습니다, 대양 오케아노스는 영어의 오션(ocean)의 어원이고 크로노스는 영어 크로니클(chronicle, 연대기)의 어원이기도 하죠. 창조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 중에는 이처럼 자연 현상을 의인화한 신들이 많습니다.

 신통기는 제목이 의미하는 바와 같이 300명이 넘는 신들의 복잡한 관계를 간결하게 표현하고, 예로부터 전해오는 신화와 전설을 하나의 세계관 및 우주관에 비추어 체계를 세운 것으로 평가됩니다.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에 의해 신들의 계보가 만들어지고 신들의 이름과 역할이 부여되었다고 역사가 헤로도토스가 말한 것처럼, 이 작품에는 그리스신화에 관한 가장 오래 된 자료가 담겨 있으며, 오늘날 알려진 그리스신화의 일부 내용이 실려 있기도 합니다. 원시 부족에서부터 만들어진 이러한 신들은 부족의 통합으로 점차 국가체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각 부족신들 사이에 위계질서를 부여하고 신들의 계보가 만들어집니다. 한국사에서 단군 신화의 얼개는 주몽의 건국신화로 이어지고, 중국사에서도 춘추전국시대에 들어와 다양한 신화가 정리되어 삼황오제로 재구성되었다는 것은 앞서 말씀드렸습니다.

 노동과 나날은 농사짓는 사람의 삶을 그리고 있는데 헤시오도스는 신의 지배를 우라노스, 크로노스, 제우스 3대로 묘사했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시대를 황금 시대, 은 시대, 청동 시대, 영웅 시대, 철 시대의 다섯시대로 구분했죠. 황금 시대의 인간은 늙지 않고 풍요와 평화를 누렸으나, 청동 시대에 본격적인 전쟁이 발생했고, 영웅 시대는 트로이 전쟁 등에 활약한 반신(半神)들의 시대였으며, 그리고 마지막 철 시대가 바로 헤시오도스가 살았던 현재에 해당합니다. 결국 이상적인 시대는 아득한 고대에 있었고 그때로부터 멀어질수록 타락한 시대로 간주하는 것인데 이러한 인식은 매우 낯익지 않습니까? 공자도 주나라를 이상적인 시대로 설정하였고, 성경도 에덴 동산에서 인간이 쫓겨난 것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당대의 선각자들은 이상적인 그 시대를 현재에 되살릴 것을 주장하였는데, 이러한 상고(尙古)주의는 사실 당시의 인간들이 이루어야 할 이상사회를 제시한 것으로 그 권위를 이상적인 고대에 설정하고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한 것이죠.

/sisatouch2@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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