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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배치 문제와 중립화론
2017-03-03 13:16:16
김태원 기자 tai0913@hanmail.net


 [시사터치 김태원 칼럼] = 동아시아 지역은 서구 제국주의의 침략이 가장 늦게 미친 지역으로 18세기에 이르러 본격화하였다. 동쪽에서는 미국이 태평양을 장악하며 동아시아로 세력을 뻗쳤다면 서쪽으로는 유럽의 열강이 침략해 들어왔다. 이러한 침략에 대해 한중일 삼국은 청의 중체서용(中體西用), 조선의 동도서기(東道西器), 일본의 화혼양재(和魂洋才)의 자세로 대응하였는데, 이른바 절충주의적 자세였다고 하겠다. 그러나 서구 열강의 군사력을 앞세운 침략적 접근은 동아시아 국가들이 막기에는 힘이 부족하였다. 사실 동아시아 지역은 인류 문명에서 오랫동안 선진적인 지역으로 자리하고 있었으나 서구 열강의 침략에 힘없이 굴복하였다. 그 원인을 두고 여러 주장이 있으나 개인적으로는 서구 열강이 근대화 과정에서 비서구지역에 비해 군사력이 기형적으로 발전한데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군사적 불균형이 18세기까지도 청은 경제규모에 있어서 영국에 앞서있었음에도 불구하고 1840년 아편전쟁에서 청이 영국의 침략에 무력하게 굴복한 이유라고 본다.

 조선의 개항은 삼국 중 가장 늦게 이뤄졌는데 문호개방에 대한 필요성은 이전부터 제기되어 왔었다. 조선 후기 북학파의 계승이라는 상징적 존재인 박규수와 조선 바깥의 세계에 대한 이해가 깊었던 중인 출신의 오경석, 유홍기가 손을 잡고 당시의 젊은 관료들에게 새로운 사조(思潮)를 열심히 소개하였다. 이렇게 형성된 개화파는 임오군란을 계기로 개항에 대한 자세에서 자연스럽게 청과 일본을 모델로 하는 세력으로 나뉘었다. 전자를 친청 개화파 내지 수구당이라면, 후자는 친일개화파 내지 개화당이라고 불렸다. 임오군란이후 청의 내정간섭에 불만을 품고 김옥균을 중심으로 한 개화당이 일본의 지원을 받아 일으킨 정변이 1884년 갑신정변이다.

 이 정변을 진압한 청의 내정간섭은 한층 노골적이었고, 이에 불만을 품은 조선 정부는 부동항(不凍港)을 얻고자 남진정책을 펼치던 러시아를 끌어들여 청을 견제하고자 1885년 조러밀약을 맺었다. 조러밀약은 세계 전략에서 대립하고 있던 영국을 자극하여 영국은 러시아 극동함대를 감시하기위한 전략적 요충지인 거문도를 불법으로 점령하였다.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국가들의 이러한 행위는 조선의 독립을 위협하는 것이었고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방법론으로 등장한 것이 중립화론이었다. 독일 외교관 부들러가 건의한 중립화론과 유길준의 중립화론은 실현되지 못하였지만 당시로서는 조선이 식민지로 전락하지 않고 독립을 유지할 유력한 방법이 아니었을까?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던 나라인 청, 러시아, 일본, 영국은 21세기 현재 중국, 러시아, 일본, 미국으로 변화하였다. 네 나라를 살펴보면 세계 1, 2위의 경제 군사대국에 해당하는데, 이들이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변화는 한국이 남북으로 분단되었다는 점이다. 한반도의 분단은 소련의 대일전 참전 직후 군사적 편의상 38도선을 획정한 것에서 비롯한다. 1948년 남북에 각각 별개의 국가가 수립된 것은 1947년 트루만 독트린이 발표되면서 시작된 동서 냉전의 산물이었고 이어서 미소의 대리전인 6.25전쟁이 일어났다. 1953년 정전(停戰)협정으로 38선을 대신해서 휴전선(休戰線)이 그어지면서 식민지 시대에도 경험해보지 못한 남북분단이라는 상황이 세기를 바꾸어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전쟁을 잠시 멈춘다는 정전협정은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남북 양측이 민족의 미래를 짊어질 100만이 넘는 젊은이들을 배치하는 계속적인 군사적 대치상황을 초래하였다. 군사적 긴장 상태를 무려 60여 년간 지속하는 이런 기형적인 분단체제는 남북 양쪽에 많은 문제를 낳게 하였다. 가장 커다란 문제로는 과도한 군사비의 지출로 인한 경제적 부담으로 민족의 삶의 질이 저하되고, 남북 대치상황은 경직되고 폐쇄된 사회 분위기를 가져온 점이다. 남북 분단으로 인한 질곡을 해소하는 길은 평화적 통일뿐이다. 그러나 한반도의 통일은 이제 우리 민족만의 의사로 결정될 수 없는 문제였다.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의 이해관계가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기 때문에 주변 4국의 합의가 남북통일에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주변 4국에 대해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관계를 통해 통일 환경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 유력한 방법의 하나가 한반도 중립화론이 아닐까?

 김대중 대통령에 의해 제시된 6자회담은 본래 북한 핵문제를 남한과 북조선, 미•러•중•소의 4개국의 합의를 통해 해결하려던 다자 회담이었다. 북핵 문제의 해결은 남북통일과 맞닿아 있는 것으로 통일도 6자 회담을 통해 달성할 수밖에 없다. 6자 회담은 6개국이 동등한 입장에서 참여한다는 점에서 결국 19세기 중립화론의 21세기 버전이다. 6자 회담을 통해 한반도를 둘러싼 과도한 군사적 긴장상태를 완화시키는 것은 남북의 군사적 충돌을 막고 분단의 고착화를 넘어 통일로 가는 길이다. 그런 측면에서 사드의 배치는 오히려 동북아 지역의 군사적 긴장을 높여 민족 통일을 저해하는 행위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사드 배치로 인한 동북아 정세의 긴장을 완화하는 길은 이해 당사국들의 다자 회담이고 이를 주도적으로 추진하는 위치에 있는 나라가 한국이다. 중립화론을 다시 살펴보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sisatouch2@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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