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터치 김태훈 칼럼] = 캐나다는 문화재 자료로 남아있는 것이 적어서 역사적인 기록물과 고증 사실은 적지만 지형은 지질활동이 별로 없는 비교적 늙은 지형에 속한다.
캐나다의 삶을 이야기하기 전에 그 역사와 지리적인 여건을 먼저 살펴보자.
학자들은 대략 3만 년에서 3만 5천 년 전부터 캐나다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한다. 이누이트족 등 여러 부족의 캐나다 원주민(네이티브, 요즘은 인디언이라는 말은 차별적 언어이면서 인도 사람들과 구별이 어려워 사용하는 것이 법으로 금지되었다)들은 고대 아시아인들이 북극 베링 해협을 건너와 부족을 형성한 것으로 보고 있다.
캐나다의 지명은 원주민의 언어인 카나타(Kanata, 우리의 땅, 고향)에서 유래되었다. 1534년 프랑스의 탐험가인 자크 카르티에(지금도 몬트리올의 구 시가지에는 자크 카르티에 광장이 있다.)는 프랑수아 1세의 지시로 보물을 찾기 위한 항해를 시작했는데 당시 원주민들의 ‘카나타’라는 말에서 지명을 캐나다로 했다.
17세기 캐나다에서는 식민지 개척과정에서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전쟁이 발생했다. 프랑스 샹플랭 선장의 탐사대가 퀘벡 지방에서 모피 교역회사를 시작하며 뉴프랑스라는 식민지를 세웠는데, 비슷한 시기 영국도 모피 교역회사(당시 모피 교역회사였던 허드슨 베이의 백화점은 아직도 남아있다)를 차리고 뉴잉글랜드라는 식민지를 세우면서 충돌이 발생한 것이다.
원주민까지 참전한 7년의 전쟁은 강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한 영국군이 퀘벡을 함락시키며 승리했다.
19세기 영국에서 파견된 몽크 총독은 당시 7개로 나뉘어 있던 식민지를 하나로 통합해 연방형태로 만들었고, 영국이 국가로 승인하면서 연방형태의 국가로 탄생되었다.
초기 캐나다 통치의 수단으로 영국 여왕에 대한 충성의 맹세나 과한 세금을 강제로 징수하는 바람에 프랑스인의 후예들은 연방에 처음 참여했던 주 중에 내륙에 위치한 매니토바나 미국으로 이주하여 아카디안이라는 특이한 집단을 형성하였다. 주로 프랑스보다 더 프랑스다운 음식을 많이 먹는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고기를 약간 태워 먹는다든지, 양념을 진하게 해서 먹는 것으로 유명하며 북미 음식 중에 Cajun이라는 양념 이름이 붙은 것은 아카디안들의 소산이다.
우리가 잘 알지 못하던 캐나다의 역사 이야기를 잠깐 동안 담았지만 몇 가지 전통으로 남아있는 것을 말하자면, 영국에서 파견되는 총독이 아직도 있으며 캐나다 시민들의 선거로 뽑은 수상을 형식적이기는 하지만 그 총독이 임명한다.
지금도 영국 여왕이 캐나다 화폐 모델로 활동(?)하고 있으며 그의 어머니인 퀸 메리의 생일 파티를 생중계한다. 다민족 국가의 입장에서 본다면 갸우뚱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긴 하다.
이것은 지금까지도 문제가 되고 있는 퀘벡 분리주의자들이나 퀘벡 독립당이 정치적으로 활동하는 명분이 되었다.
그리하여 지금도 2중 언어(영어, 불어)가 쓰이게 된 계기가 되고 이들을 달래기 위해 연방 정부에서는 이민 쿼터도 따로, 어업권(뉴펀들랜드는 세계 4대 어장의 하나이다)도 따로 배정해 주는 등 많은 혜택을 퀘벡 주가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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